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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성당의 토요일 주일미사, 탄광촌의 시간을 품은 신앙유산

2026.07.30 20:31

오늘 7월 30일, 태백시청에서 장성성당 문화유산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다 예전에 태백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태백의 토요일 주일미사는 장성성당을 상징하는 전통이다.”

정확한 근거를 확인해 본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성성당의 역사와 탄광촌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치기에는 꽤 흥미로운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성성당은 1961년에 설립된 태백의 오래된 본당이다.

석탄산업이 활발했던 시절, 장성 지역에는 수많은 광부와 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광부들은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고, 가족들은 매일 무사 귀환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 탄광촌에서 성당은 단순히 미사를 드리는 장소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광부들은 작업장의 안전을 기원했을 것이고, 가족들은 불안을 달래며 서로를 의지했을 것이다. 성당은 신앙의 공간인 동시에, 위험과 상실을 함께 견뎌 내던 공동체의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건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또는 어떤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지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 공간이 당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그 시대의 노동과 생활방식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장성성당의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 역시 하나의 생활사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광부들의 시간에 맞춘 미사

탄광은 일반적인 직장처럼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곳이 아니었다.

광부들은 교대근무를 했고, 장시간 지하에서 일해야 했다. 일요일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쉬거나 정해진 시간의 미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는 단순히 미사시간을 하나 더 편성한 것이 아니라, 광부들의 불규칙한 노동시간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현실적인 통로였을 수 있다.

물론 장성성당이 우리나라 토요일 주일미사의 발상지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주장을 하려면 당시 본당 문서와 주보, 교구 기록, 광부와 가족들의 증언 같은 자료가 필요하다.

다만 장성성당에서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중요하게 운영되었는지가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탄광 교대근무로 일요일 미사 참석이 어려웠고, 그 필요에 따라 토요일 저녁 미사가 지역 신자들의 중요한 신앙생활로 자리 잡았다면, 이는 교회가 탄광 노동자의 생활시간에 적응한 흔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성성당은 단순히 오래된 성당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 광부들의 노동시간에 맞추어 운영된 종교공간이며, 광산사고의 위험 속에서 광부 가족들의 불안을 품었던 장소이고, 탄광도시의 노동문화와 신앙생활이 함께 축적된 현장이 된다.

생각을 따라 장성성당으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직접 장성성당을 보고 싶어졌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카메라를 챙기고 장성으로 향했다.


장성성당1

목요일 저녁 미사가 있는 것 같아 오랫동안 머물지는 못했다.

미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성당 주변에서 몇 장만 찍고 서둘러 나왔다.


처음 마주한 장성성당은 내가 다니는 황지성당보다 조금 더 크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성당 앞에는 오래된 종탑이 서 있었고,

회색빛 외벽과 아치형 창문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시간을 견뎌 온 건물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뒤편의 짙은 산과 성당의 낡은 색감도 잘 어울렸다.


도시 한가운데 놓인 건물이 아니라, 산과 탄광촌의 시간 안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성당처럼 보였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직접 마주했을 때 건물의 깊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밤하늘과 함께 담아 보고 싶은 성당

성당 옆을 따라 걸으며 한쪽에서 건물 전체가 보이는 자리를 발견했다.

회색 성당과 종탑, 그 뒤로 이어지는 산의 능선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장성성당2장성성당3

밤에도 들어올 수 있는지, 별도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언젠가 이 자리에서 장성성당과 밤하늘을 함께 담아 보고 싶다.

별이 보이는 맑은 밤도 좋고, 성당의 십자가 곁에 달이 걸린 밤도 좋을 것 같다.

탄광의 불빛과 광부들의 시간이 사라진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당을,

지금의 태백 밤하늘과 함께 기록해 보고 싶다.


성모상과 산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장성성당4


성당 초입에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다.

붉은 벽돌로 만든 작은 공간 안에 흰 성모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산비탈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졌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


장성성당5

내가 보아 온 여러 성당에서는 십자가의 길이 성당 내부 벽면이나 유리 장식으로 마련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장성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성당 뒤편의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광부와 가족들이 실제로 이 길을 걸으며 기도했는지는 확인해 보아야 한다.

다만 탄광촌의 산비탈에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이라는 점만으로도 묘한 의미가 느껴졌다.

매일 어두운 갱도 안으로 들어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던 가족들, 그리고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했던 공동체.


그런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길은 성당을 장식하는 조형물이라기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고통과 기다림을 되새기는

실제적인 기도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건물보다 오래 남는 것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장성성당을 둘러보면서, 문화유산은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건물에는 그곳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남는다.

어떤 시간에 미사를 드렸는지,

누구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는지,

어떤 두려움을 함께 견뎠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으며 신앙을 이어 갔는지.

그런 기억들이 확인되고 기록될 때, 오래된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에서 한 지역의 생활사와 공동체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된다.

장성성당의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가 실제로 광부들의 교대근무와 깊은 관련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은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장성성당은 탄광촌 사람들의 노동시간과 삶의 조건을 어떻게 품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장성성당의 진짜 가치는 건물의 연도와 형태를 넘어

광부와 가족들이 이곳에서 살아 낸 시간 속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가능성을 생각하며 성당 주변을 잠시 걸었고, 몇 장의 사진으로 지금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밤하늘 아래의 장성성당도 한번 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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