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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탐구생활]봉사는 반드시 희생이어야 할까, 인간의 신념은 어디에서 바뀌기 시작할까

2026.07.25 09:10

봉사자와 리더는 같아야 하는가

성 야고보 축일에 생각해 본 ‘섬기는 리더십’

성 야고보 축일을 맞아 대부님께서 야고보 사도에 관한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신의 두 아들이 예수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청한다.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자식을 위해 강한 치맛바람을 일으킨 셈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어머니의 욕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두 형제 역시 높은 자리를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제자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불쾌해했다.

그들이 야고보와 요한의 욕망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신들 역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지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때 예수님은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를 정해주시지 않았다.

오히려 높은 자리의 의미 자체를 뒤집으셨다.

높은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첫째가 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을 생각하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봉사자와 리더는 꼭 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가?

리더와 봉사자는 같은 역할일까

공동체에는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때로는 결정을 내리고, 구성원을 설득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리더와 봉사자의 역할을 완전히 같게 만들라는 뜻일까.

리더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일만 해야 하고, 권한이나 역할의 차이도 없어야 한다는 뜻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자기 몫을 다하는 봉사자도 필요하고, 전체의 방향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리더도 필요하다.

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리더는 자신의 권한을 특권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은 이렇다.

모든 봉사자가 반드시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 그

러나 리더가 봉사자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 리더십은 어느 순간 지배에 가까워질 수 있다.

리더와 봉사자는 같은 역할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교적 리더십 안에서 봉사의 정신과 리더의 역할은 분리될 수 없다.

높은 자리를 원했던 야고보

야고보는 처음부터 완성된 성인이 아니었다.

그는 높은 자리를 원했던 사람이다.

예수님 곁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었고,

다른 제자들보다 앞서기를 바랐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면서 변화했다.

높은 자리를 원했던 사람은 결국 예수님의 길을 증언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되었다.

내게 야고보의 삶은 이렇게 보인다.

높은 자리를 원했던 사람

→ 예수님의 길을 배운 사람

→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

중요한 것은 야고보가 처음부터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욕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이 원했던 ‘높은 자리’의 의미를 새롭게 배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남보다 위에 서는 것이 높은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 높은 자리임을 삶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봉사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나는 조금 불편한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나는 내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능력을 우선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

내 일이 편해지기를 원하고,

내가 겪는 불편을 줄이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도 많은 경우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처럼 “오직 남을 위해 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자기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봉사하지만 속으로는 억울함과 원망이 쌓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나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소모하는가.

책임을 피하면서 이익만 가져가는가.

내게 주어진 능력과 권한을 혼자 독점하는가.

아마 중요한 질문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의 문제를 해결한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내 방식의 봉사는 희생부터 선언하는 봉사와는 조금 다를 것 같다.

나는 먼저 내 문제를 해결한다. 불편한 것을 고치고, 반복되는 일을 줄이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결과를 나 혼자만을 위해 닫아두지 않을 수는 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의 일을 편하게 해줄 수 있고,

내가 정리한 지식이 다른 사람의 시간을 줄여줄 수도 있다.

내가 해결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누군가는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출발은 나를 위한 일이었지만, 결과는 다른 사람에게도 열릴 수 있다.

그것도 봉사의 한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봉사를 반드시 자기희생이나 손해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면서, 그 개선의 결과를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 역시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봉사자는 반드시 리더일 필요가 없다

이번 묵상을 통해 나는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다.

봉사자는 반드시 리더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리더는 반드시 봉사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봉사는 단순히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권한을 다른 사람을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나아지게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을 우선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그 해결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어둘 수는 있다.

내 이익도 지키되 남의 몫을 빼앗지 않는 것.

내가 얻은 편리함을 혼자 독점하지 않는 것.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이것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봉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성 야고보의 삶은 처음부터 욕망이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높은 자리를 원했던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높은 자리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마침내 자신의 삶으로 그 길을 증명한 이야기다.

나 역시 완성된 봉사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기보다,

내가 가진 능력과 내가 해결한 문제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조금씩 열어두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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