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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탐구생활]본사 문서가 ‘딸깍’이면 계열사는 새벽에도 봉산탈춤을 춘다!!! 제발좀!

2026.08.17 03:38

새벽에 전산 사고가 하나 터졌다.

어찌어찌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던 참에 팀장님이 본사에서 내려온 사내 시스템 관련 기술문서와 몇 가지 질의를 내게 넘겨주셨다.

문서를 읽다가 한참을 멈춰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조금 갑갑해져서 글을 적어본다.

요즘은 기술문서든 일반 문서든 AI를 많이 활용한다.

개발 분야도 마찬가지다.

AI 기반 솔루션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고, 과거 개발자가 직접 하던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을 AI가 보조하거나 대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나는 AI로 문서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안을 만들고, 내용을 구조화하고, 문장을 정리하는 데 AI는 꽤 훌륭한 도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식적인 기술문서라면 사람이 다시 읽어야 한다.

확인된 사실과 추론을 구분하고, 용어가 정확한지 확인하고, 시스템의 실제 동작과 맞는지 검토하고, 무엇을 상대에게 질문해야 하는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AI가 만들어준 문장을 거의 그대로 상대에게 넘기면 묘한 일이 벌어진다.

보낸 사람은 한 번 ‘딸깍’했는데, 받은 사람은 그 문장을 다시 역추적해야 한다.

“이건 실제로 확인된 사실인가?”

“작성자가 추정한 내용인가?”

“정확히 무엇을 묻는 것인가?”

“기존 시스템의 실제 동작과 일치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어디까지 다시 조사해야 하는가?”

결국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사용했는데, 검토를 생략하면서 오히려 검증 비용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역설이 생긴다.

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오래된 시스템을 분석하면서 내가 배운 기본적인 방식은 대략 이랬다.

관찰하고, 흐름을 추적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제 동작으로 검증하면서 구조를 복원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값 하나를 보더라도 단순히 변수명이나 DB 컬럼명만 보고 의미를 확정하지 않는다.

“이 값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누가 변경하는가?”

“언제 사라지는가?”

“다른 기능에서도 사용되는가?”

를 먼저 본다.

그리고 실제 시스템에서는

화면의 결과 → 이벤트 → 내부 데이터 구조 → 서버 호출 → 비즈니스 로직 → DB 또는 프로시저 → 다시 화면

의 흐름을 따라가며 실제 동작을 확인한다.

내가 다루는 특정 시스템에서는 비즈니스 로직이 Java로 구현되어 있고,

데이터 처리와 영속성 계층에는 JPA가 사용되어 있어 실제 업무 로직이 Java 코드와 JPA 처리 구조 전반에 녹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실제 실행 결과를 통해 구조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능이 어떻게 동작하는가”와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앞의 것은 실행 흐름을 추적하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뒤의 것은 당시 요구사항, 설계 의도, 운영정책, 예외사항 같은 별도의 맥락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시스템을 분석할 때는 자신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과, 기존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실행 흐름과 호출 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DB 구조나 일부 결과값만 보고 질문부터 던지기 시작하면, 받는 쪽에서는 시스템 설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문득 2008년쯤 SI 개발 초창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요구분석을 해야 할 사람이 현업 실무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런 식으로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하면 돼요?”

“이건 뭔가요?”

“우리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니 기존 시스템의 개념을 처음부터 전부 알려주세요.”

물론 기존 업무를 아는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먼저 조사할 수 있는 것까지 조사하지 않은 채, 분석 자체를 상대에게 넘겨버리는 경우였다.

나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몇 번 겪었고, 그 과정에서 SI 하도급 구조에 꽤 큰 환멸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AI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이런 비효율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AI가 문서를 읽어주고, 코드를 분석하고, 초안을 만들어주면 사람은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끔은 반대의 모습을 본다.

사람이 해야 할 조사와 판단까지 AI에게 넘기고, 그 결과물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사람이 준비 없이 질문을 던졌다면,

이제는 AI가 그 질문을 더 길고, 더 논리적이고, 더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해준다.

그래서 오히려 문제를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진다.

기술은 고도화됐는데, 업무 방식은 그대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느끼는

‘고도화된 망하는 시스템’

의 정체인지도 모르겠다.

AI가 초안을 던진 것은 잘못이 없다.

AI는 시킨 일을 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사람이 다시 읽고, 검증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AI가 어린아이처럼 초안을 던진 건 죄가 없다.

문제는 그걸 어른이 검토도 하지 않고 공식문서처럼 넘긴 순간이다.

그때부터 받는 사람은 봉산탈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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