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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탐구생활]20년 된 시스템은 정말 낡은 것일까? - 다시 생각해보기

2026.09.17 10:29

나는 낡은 시스템 속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가치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골프 예약 시스템은

기존 업무 로직과 데이터를 최대한 살리면서

새로운 화면과 구조를 입혀 베타 오픈을 향해 가고 있다.

내 출발점은 단순했다.

“기존 자산 중에는 재사용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나는 그 가설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실제로 오래된 EJB 안에는

지금도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업무 로직이 있었고,

기존 데이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반응형 화면을 만들고,

보안 검증을 서버 쪽으로 옮기고,

사용자 경험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변했던 것 같다.

“봐라. 아직 쓸 수 있잖아.”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멈춰 보게 된다.



나는 정말 기존 시스템 안에 남아 있는 가치를

찾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확신을 키워가는 동안

전면 재구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혹시

“20년 됐으니까 그냥 버리자는 생각”

정도로 단순화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술부채, 보안, 유지보수, 인력 수급,

문서화되지 않은 업무 규칙, 확장성,

특정 환경과 특정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


내가 골프 예약이라는 일부 영역을 이해하고

몇 개의 모듈을 직접 뜯어보았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오류일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시스템의 범위를 조금 이해한다.”

라는 생각 자체가

나에게 일종의 개념적 자만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ㅡ.ㅡㅋ


그런데 기술적인 판단보다

내가 더 불편하게 바라보게 된 부분은 따로 있다.


“나는 시스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 있었던 것인가?”


처음에는 분명

기존 자산 속에서 재사용 가능한 가치를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하나씩 나오고,

골프 예약 시스템이 실제로 동작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는 마음도 함께 갖게 된 것 같다.


그 마음 자체가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세운 가설을 검증하고,

결과로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가 말했던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것’과 모순되는 것은 아닐까.”


내 결과물이

누군가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판단을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에서

상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내가 보지 못한 위험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의 범위가

나보다 훨씬 넓은 것은 아닌지

충분히 생각해 보았을까.

며칠 전 나는 사랑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상대에게 상처를 덜 주는 것이 중요한가?”

회사 일이라고 해서

이 질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틀린 것을 맞다고 말하거나,

기술적인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가능한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다만

내가 가진 사실과 능력과 옳음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어쩌면

겸손도 비슷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예전에는 겸손을

“내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겸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맞았을 때

그 옳음을 어디까지 주장할 것인지 아는 것.

그것 역시 겸손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주 애매하다.

기존 시스템에는

분명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야 할 이유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그 둘 중 어느 하나를

너무 빨리 정답이라고 선언했다면

그것 역시

내가 비판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단순화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오래된 것 안에 남아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하지만 그 가치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의 가능성까지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끝까지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스템뿐 아니라

그 시스템을 둘러싼 사람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

아마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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